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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성경

로마 카톨릭에 대하여 [펌]

<로마 카톨릭>


<천주교의 비성경적 교리와 제도>


● 로마 주교에게 교황 칭호 사용(440년)

로마 교회 교황의 목록은 베드로부터 시작됩니다. 교황을 일컫는 Pope라는 말은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가톨릭 사제를 뜻하는 신부(神父, God Father)라는 말도 ‘하나님 아버지’이므로 이것은 사람이 불러서는 안 되는 신성모독적인 표현이므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존재하고 머리에 쓰는 모자에도 그런 말이 적혀 있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준 적이 없습니다.

땅에 있는 자를 너희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한 분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니라. (마 23:9)

천주교는 자기들이 첫 교황 베드로를 정점으로 이룩됐다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이는 거짓말입니다. 베드로는 그들의 교황과는 달리 결혼도 했고, 로마에 간 적도 없다는 것이 성경을 통해 드러나며,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어떤 근거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마 16:8)

이 말씀을 근거로 내세우지만 베드로의 이름은 그리스어(헬라어)로 '작은 돌'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이 반석'이라 함은 베드로의 믿음 고백, 즉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을 뜻합니다(마 16:16).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의미입니다.


● 교황무오설(교황무류설, 1870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그분 자신의 가르침을 후대에 전하고 다스릴 권세를 사도직의 계승자인 로마 교황에게 맡겼다는 개념에 따라, 천주교는 신앙과 도덕에 관한 공회의 결정이나 교황의 선언 등은 그리스도의 약속과 성령을 통해서 나온 것이므로 오류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역시 아무 근거 없는 것이며, 역대 교황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전쟁과 약탈을 일삼으며, 거짓 교리를 만들고, 엄청난 부를 축적한 것 외에도 자신의 사생아를 낳아 다시 교황 자리에 앉히기도 하는 등 수없는 암투와 권력 다툼을 벌인 악행의 근원이었습니다.


● 고해성사 제정(1215년)

이것은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할 수 있는데도 사제가 죄를 듣고 특정한 벌로 대체해서 용서해 주는 심히 비성경적인 일입니다. '너희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약 5:16)'라는 말씀을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로 바꾼 것은 천주교 신학자들이었습니다. 더욱이 죄를 특정인에게 일방적으로 고하는 것은 성경에 없는 가르침입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정치적 비밀을 캐는 일은 정치세력인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정보수집 능력의 증대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 사제 독신 규정(1079년)

이것은 사제들과 수녀들이 결혼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인데, 이 역시 성경과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원리는 에덴동산에서 명령하신 것처럼 사람들이 다산하고 번성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의 가르치는 자인 목사(감독)는 반드시 결혼한 남자이며 자녀를 잘 양육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딤전 3:7).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이런 제도는 사제들의 성적 문란을 가져왔고, 갖가지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으며, 많은 사생아 출생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전임 베네딕토 16세 때는 아동 성추행 사제 400명이 한꺼번에 직위를 박탈당하기도 했습니다.


● 종교다원주의의 선봉장

교황은 늘 모든 종교인과 친구입니다. 그들은 모든 종교가 결국 한 절대자에게 향한다고 주장해 많은 이들을 지옥으로 이끕니다. 한 예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6년에 이탈리아의 아시시에서 세계 12개 주요 종교단체 지도자들 130명과 모여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 모임을 가졌습니다. 교황이 만나는 종교계 사람들은 뱀 숭배자, 배화교도들(불숭배자), 영매자, 정령숭배자, 북아메리카 마법사, 불교도, 회교도, 힌두교도, 그리고 개신교도 등 구분이 없습니다.
천주교로 옮기는 교인들이 많은 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수평이동이 아니라 개종입니다. 천주교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올바른 신약교회>



대부분의 한국 교회에서는 주일 대예배 때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우고 끝에는 목사가 두 손을 들어 축도를 합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가장 큰 교세를 갖고 있는 침례교회나 한국의 독립침례교회 - 앞으로 이 책에서는 이런 교회들을 자유교회 혹은 독립교회라 하겠음. - 등에서는 예배 순서에 이런 것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이와 같은 교회를 방문하면서 이 교회가 이상한 게 아닌가 하고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단 감별의 시금석으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암송 여부를 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 순서에 이런 것들이 없는 교회에 들어서면 일단 이 교회가 이단이 아닌가 하고 의아한 눈으로 보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기존 교회와 달리 자유교회에서는 새벽기도나 통성기도를 하지 않고 또 자매들이 공적인 기도를 하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기존 교회와 자유교회는 겉모습만 살펴봐도 무언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존 교회에서는 대개 목사가 가운을 입고 시간이 되면 ‘땡땡땡’ 하고 종을 친 뒤 예배 의식을 집행하며 이런 의식의 일환으로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암송합니다. 또 기존 교회는 예배당을 가리켜 성전이라 부르며 많은 경우 축도를 하는 목사는 축복권 및 저주권을 가진 구약시대 제사장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자유 교회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할까요?
이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궁극적으로 어느 것이 신약 교회의 예배 형식으로 더 적합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자에서는 왜 이런 차이가 생겼는지를 추적하고, 사도신경 및 주기도문 암송, 축도, 새벽기도, 통성기도 등이 성경적인 예배 절차라 할 수 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책자를 통해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하는 성도들이 불어나기를 원합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에게 경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경배하는 것을 아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라.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 하시니라(요4:22-24).



-두 종류의 교회-

한국에는 개신교회가 주류이므로 역사적으로 두 종류의 교회가 존재해 왔음을 아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예배 형식의 큰 차이는 교회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므로 먼저 교회의 종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내 교회’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I will build my church, 마16:18)라는 웅대한 선언을 통해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교회라는 기관을 세우실 것을 천명하셨습니다. 이 획기적인 선언 속에는 신약 교회의 소유주가 예수님 바로 그분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란 무엇일까요? 많은 이들이 예배당을 교회로 알고 있지만 사실 교회 곧 ‘에클레시아’(Ecclesia)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을 뜻합니다. 즉, 구원받아 천국 백성이 된 성도들 자체가 교회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과 달리 신약 교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구원받은 성도라면 누구나 다 제사장이 된다는 것입니다(벧전2:5, 9).
그러나 주후 1세기가 지나가기도 전에 구약의 제사장 계급 체제로 돌아가 성도들 위에 군림하려는 무리가 교회 안에 생기기 시작했고 이들은 예수님의 신약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계2:15). 그 이후의 교회 역사는 창조주시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기독교’와 창조물인 교회를 따르는 ‘교회교’ 사이의 심한 갈등과 반목의 역사입니다. 즉, 교회 역사는 ‘국가교회’(State church)인 ‘교회교’가 ‘자유교회’(Free church)인 ‘기독교’를 심히 핍박하고 박해해 온 역사입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참된 교회와 바른 교회사에 근거하여 ‘성도들의 피 흘린 발자취’를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있을 말세의 배도가 바로 교회라 불리는 곳에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큰 오해

많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천주교에서 나온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천주교가 아니라 유대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포함하여 구약 성도들, 열두 사도들, 첫 순교자 스데반, 첫 선교사 바울 등 대부분의 초대 교회 성도들은 천주교인이 아니라 유대인이었으며 성경의 대부분이 유대인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천주교에서 초대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베드로 역시 유대인이었으며 사실 베드로나 바울 같은 사도들은 천주교를 알지도 못했습니다. 신약의 복음 또한 로마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시작되고 확산되어 땅 끝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시작부터 천주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가 천주교에서 나왔다는 거짓말을 믿게 된 이유는 단 한 가지 때문입니다. 기독교회사가 필립 샤프 같은 자유주의자 즉 천주교의 영향을 받은 교회사가들에 의해 철저히 왜곡되었고 또 ‘천주교에서 나왔으나 천주교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는 프로테스탄트들’이 이처럼 ‘왜곡된 교회사’ 즉 엄밀한 의미에서 천주교회사를 자기들의 교회와 신학교에서 여과 없이 가르쳐 왔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시작은 AD30년경이고 천주교의 시작은 AD313년이다. 천주교는 기독교보다 무려 300년 이후에 생겨났다. 그런데 어떻게 천주교에서 기독교가 나올 수 있는가?
천주교에서 나온것은 '기독교'가 아니고 '개신교'다.)



-고귀한 무리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시민으로 국가의 법에 순응하였으나 그 당시 로마 제국의 카이사르(가이사)가 자기를 주 하나님으로 선언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카이사르는 자기를 신이라 부르면서 자기에게 경배와 희생을 드릴 것을 요구했으나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단호히 거부하였으며 이에 따라 그들에 대한 무서운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도덕이나 가치관뿐 아니라 심지어 황제의 법도 주 하나님의 법에 우선할 수 없다고 믿었고 결국 자기를 신으로 선언한 황제의 눈 밖에 나게 되었습니다.

한편 카이사르는 기독교와 바빌론 신비 종교를 혼합해서 자신을 우두머리로 하는 국가교회인 천주교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많은 교인들이 천주교라는 배도의 넓은 길을 따라갔습니다. 한편 이것을 거부하는 참 성도들은 맹렬한 핍박을 받으며 맹수들의 밥이 되면서도 결코 국가교회의 일원이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고귀한 무리들은 자기들 안에 영원토록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로 신앙 양심을 따라 국가교회가 아닌 자유교회를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냐, 카이사르냐?-

주후 313년, 대음모자 콘스탄틴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기독교를 로마의 국가 종교로 공인했습니다. 그 이후로 이 타락한 국가교회는 이교도들의 풍습에 근거한 마리아 숭배, 성인 숭배, 각종 우상 숭배, 제사장 체계, 교황, 추기경, 교부, 연옥, 면죄부, 유아 세례 등 도저히 성경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가증한 것들을 강제로 교회에 부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국가교회는 자기들의 범주 안에 거하려 하지 않는 자유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여 참 성도들을 화형이나 수장 등 각종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했습니다. 이단이란 말은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중세암흑시대에 천주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 받으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피 흘린 발자취-

예루살렘 교회에서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교회는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로 퍼져나가 1세기 후반에는 그 당시의 온 세상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또 국가교회의 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짊어지고 도시를 떠나 산지에서 계곡에서 유랑하며 꾸준히 순례의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주후 2세기에는 처음으로 소아시아에서 몬타니스트들이 사도 교회의 순수성을 외치면서 믿는 성도만이 교회의 회원이 됨을 주장했으며, 스스로 믿음을 고백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에게 베푸는 유아세례는 전적으로 비성경적임을 선언하고 재침례를 행했습니다.

주후 3세기에는 전 로마제국에서 노바티안들이 일어났습니다. 이들 역시 유아세례의 죄악을 폭로하며 교회의 순수성을 외쳤습니다. 이들은 그 순수성으로 인해 후에 ‘순수한 자들’이라는 뜻을 지닌 카타리들이 되었습니다. 그 뒤 4세기 초에는 아프리카에서 도나티스트들이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외치며 일어났습니다. 또한 7세기경에는 타우루스 산지에서 폴리시안들이 초대 자유교회의 맥을 이으며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선교하기 시작했는데 이들 역시 구원받은 성도들만의 침례와 그런 성도들만의 교회 회원권을 주장했습니다.
그 뒤 자유교회는 12세기경의 왈덴시스(왈덴시안)들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알프스 계곡에서 바른 성경을 붙들고 오직 성경만이 최종 권위임을 외치면서 천주교회와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불가리아와 보스니아에서는 보고밀이라는 이름의 자유교회가 천주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 받으면서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는 폴리시안의 뒤를 이은 알비겐시스들이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들고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프로테스탄트/개신교-

주후 1517년 천주교회의 사제였던 마틴 루터는 교황과 천주교회에 대항하며 ‘항거자’ 즉 프로테스탄트가 되어 개신교의 원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약성경의 자유교회에서 출발하지 않았기에 천주교회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것보다는 그 안에 남아 있으면서 개혁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루터교회는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핵심 교리를 제외하고는 천주교회의 악습과 전통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아 생명이 없는 국가교회로 전락하고 말았고 결국 1998년 6월에 미국의 루터교회는 다시 천주교회와 하나가 되기로 공식적으로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장로교회의 아버지 칼빈 역시 유아세례 등의 악습을 타파하지 못하고 제네바에서 구약시대 장로들의 신정정치 국가교회를 구축하면서 재침례교도 같은 자유교회 무리들을 핍박하였습니다.
천주교회에서 나온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들 - 개신교회들 - 은 교회가 다스리는 세상이 곧 그리스도의 왕국이라는 천주교회의 신념을 그대로 수용하여 한결같이 무천년주의나 후천년주의를 따랐고, 성경 말씀 준수 측면에서 볼 때 많은 교리에서 자유교회와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근대 자유교회-

한편 종교개혁 시대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교회는 재침례성도, 메노나이트 등의 이름으로 온 유럽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회중 통치를 가르치며 믿는 자들만의 교회 회원권, 전 성도 제사장 직분, 국가와 교회의 분리, 양심의 자유 등을 외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민의 물결을 따라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17, 18세기 영국과 미국에서는 자유교회의 전통을 이어 받은 침례교인들(Baptists)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고 존 번연, 찰스 스펄전, 윌리엄 캐리, 아도니람 저드슨 같은 걸출한 인재들이 나왔습니다.
미국에서도 처음에는 국가교회를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침례교인들이 이를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결국 이들로 인해 국가와 교회의 분리,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이 헌법에 명시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누구든지 양심에 따라 종교를 택할 수 있게 되었고 수많은 영혼들이 국가교회의 탄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현대 국가들의 대부분이 미국 헌법을 기초로 하여 이러한 자유들을 허락함으로써 결국 전 세계 시민들이 자유교회의 투쟁으로 인한 인권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말세의 배도-

지금 온 세상은 정치와 경제와 종교의 통합을 원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UN 주도 하에, 경제는 WTO 등을 통해 이미 통합이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종교는 1960년대의 제2차 바티칸 공회 이후 천주교회의 주도 하에 급속도로 통합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WCC, NCC, 오순절/은사주의, 뉴에이지 운동, 록음악, NIV, Living Bible 등의 타락한 성경, ‘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복음주의자와 천주교도의 연합, ECT) 등이 모두 천주교회의 통제를 받으며 기독교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천주교회가 주축이 된 사상 최대의 국가교회가 우리 앞에 출현하여 다시 한 번 성도들을 핍박하게 될 것입니다.

이 같은 말세의 배도에 대하여는 이미 사도 바울이 자신의 서신서들에 여러 차례 기록해 놓았습니다! ‘어떻게 루터로부터 출발한 프로테스탄트 루터교회가 천주교회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뿌리를 성경에 두지 않으면 누구나 배도의 길로 들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뿌리는 종교개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당신은 지금 어느 길에 서 있습니까? 배도한 교회와 철저히 분리된 사람들이 성경을 따라 피를 흘리며 남겨 준 발자취를 따를 때에만 배도의 거센 물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에서는 아합 왕의 극심한 우상 숭배 속에서도 칠천 명의 남은 자들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당신도 그런 남은 자 중에 있습니까? 성경대로 믿는 자가 구원을 받고 후에 주님께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크기를 보지 말고 내가 속한 무리가 순결한 자들인가 살펴보기 바랍니다. 부디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내가 과연 맹목적으로 ‘교회교’의 전통을 따르고 있지는 않은가 점검하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지금 당신은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신 그분의 ‘내 교회’에 속해 있습니까?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예배 형식 차이의 원인

자, 이제 기독교와 개신교 그리고 천주교가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지 알았으면 대부분의 개신교회와 자유교회의 예배 형식이 왜 차이를 보이고 있는지 곧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천주교회는 아직도 구약의 제사장 체계를 유지하면서 구약시대의 성전 예배와 비슷한 형식의 ‘의식 예배’(Ritual service)를 드립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임 장소를 성전 대신 성당이라고 부르고 사제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 세워 평신도와 다른 부류로 취급하며 예배 안에 각종 형식을 집어넣고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은 이런 형식과 의식을 보면서 천주교 예배는 대단히 장엄하다고 말합니다.

천주교회에서 나온 개신교회도 태생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므로 대부분 천주교회와 유사한 형태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국내의 개신교회는 대개 예배당을 성전이라 부르며 목사가 거의 구약시대 제사장 수준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평신도와 확연히 구분되고 있습니다.
약 2,000년 전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셨고 이때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내리면서 예표였던 구약시대가 사라지고 실체인 신약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므로 마태, 마가, 누가가 모두 이것을 기록하였습니다(마27:51; 막15:38; 눅23:45). 이를 확증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죽기 전날 밤 유월절 관례를 주의 만찬으로 바꾸시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습니다.

26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집으사 축복하시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또 잔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다 그것을 마시라. 28이것은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나의 피 곧 새 상속 언약의 피니라(마26:26-28). - 마26:28의 ‘새 상속 언약’은 영어로 ‘New Testament’이며 짧게 ‘신약’이라고 한다. 그런데 천주교 사본에서 나온 개역성경(개정개역 포함)은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인 ‘새’(New)를 제거하여 새 언약의 신약시대가 열린 것을 성도들이 보지 못하게 한다. -
예수님의 완전한 대속 희생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신약시대가 열렸으므로 이제는 더 이상 구약시대의 형식과 계급체제 등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이를 확실히 인식한 자유교회 성도들은 십자가 사건 이후부터 구약시대의 형식에 갇힌 예배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드려왔고 이것은 ‘의식 예배’가 아니라 ‘비의식 예배’(Non-ritual service)로 구체화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 사건 이전까지 신약시대의 초기 10년 동안에는 그리스도인이 모조리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이 자연스럽게 예배 장소로 쓰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10년이 지나서 이방인 고넬료의 회심이 있은 이래로 사도 바울에 의해 곳곳에 이방인 교회들이 세워지면서 형식으로 가득한 구약시대의 의식 예배는 완전히 폐지되고 간결한 형태의 비의식 예배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사도 바울이 교회를 세우면서 제사장처럼 가운을 입고 예배를 집례했을까요? 예배당을 성전 혹은 성당이라고 불렀을까요? 구약시대의 의식 예배를 집행했을까요?
이 모든 것은 사도 베드로의 표현대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며 유대인 조상들이나 심지어 유대인 사도들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입니다(행15:10). 이에 예루살렘 회의에서 주님의 형제 야고보는, 성령님과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 성도들에게 우상숭배, 부정한 음식, 음행을 금지하는 규정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짐도 지우지 아니하겠다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유교회 성도들의 예배에는 시와 찬송가와 영적 노래와 대언(설교)만 있었습니다(엡5:19; 고전14:26-33). 또한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성도들이 예배 모임에서 회중이 정하는 대로 원하는 때에 주의 만찬을 행하였습니다(마26:26-30; 고전11:23-34). 이것이 자유교회 예배의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예배에는 천주교 예배의 일부인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암송이나 목사의 축도 등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인식한 뒤 사도신경, 주기도문, 축도, 새벽기도, 통성기도 등에 대한 분석을 읽으면 더 확실히 진리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2:15).











<뉴에이지 카톨릭 교회>


로마의 교황이 뉴에이지 추종자들 간에 매우 인기가 높다는 것은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신화와 바빌론의 혈통 때문이다.
오래 전에 힌두교 신비주의자들이 뿌린 씨들은 로마라는 토양 위에서 아주 잘 자라고 있는데, 이는 '배도자' 콘스탄틴이 참 기독교와 이교도들의 사상을 합작해서 수세기에 걸쳐 거짓 기독교를 배양한 결과이다. '뉴에이지 영매자들'의 프로필에 관한 박사학위 연구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카톨릭이 그들(영매자들)의 대부분을 길러 냈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어떤 음성을 듣는다는 생각에 푹 빠져 있다."


현재 로마의 영향력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으며, 그녀가 입고 있는 양털 옷은 점차로 늑대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결론적으로 '뉴에이지 회보'의 발간자 리베세이(Roy Livesey)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동쪽(East)'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도하고 있다.


"로마는 뉴에이저들에게 점점 더 매력적인 자신의 사진을 보여 주고 있다."


주 하나님께서는 이미 에스겔에게 "매우 가증한 것들"이 "주님의 성전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동쪽'을 향해 얼굴을 들고 있는 배도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겔8:16).
많은 영혼들이 동양의 신비주의를 향해 얼굴을 돌리자,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그들을 사로잡아서 '짐승에게로' 돌이키도록 하고 있다. 그는 "로브제르비토레 로마노"(L'Observatore Romano, 인간에 대한 영적 비전)라는 연설에서 자신을 따르는 8억의 추종자들에게 다음을 추구하라고 호소했다.

"인간에 대한 인도(India)의 영적 비전... 세상이 이 고대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참으로 잘하는 일이다."


수 세기 동안 깊게 뿌리를 내린 옛 습성에 따라, 로마는 자기에게로 오려는 모든 이들, 즉 티벳의 불교도들, 힌두교의 요기(Yogi)들, 마술사들, 신비주의자들, 모슬렘의 수피(Sufi)등을 초대했다(잠언 7장 참조).
반면에 로마는 성경적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끊임없이 박해를 가하고 있다.
'전국 카톨릭 리포터'지는 같은 호에서 다음과 같은 불화살로 그리스도인들을 맹렬하게 공격한다.


"근본주의자들을 비웃는 것으로 인해 만족을 느끼는 것이 죄가 되긴 하겠지만, 그럴지라도 계속해서 그들을 비웃어라."

"근본주의자들은 성가신 자들이다. 근본주의자들과 협력하거나 혹은 그들 중 몇 명을 개종시키는 것은 아주 어렵다."

"정신나간 근본주의자들..."


로마는 신비주의를 배격하라는 성경의 관점을 저버림으로써 영적으로 눈이 멀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마법을 걸고 있는 순간의 마법사나 광적인 수피파 수도승보다 더 "광적인" 자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계속해서 신비주의를 추구했고, 이와 더불어 성경적인 그리스도인들을 '혹평하는 일'도 자행해 왔다. 서기 4세기경부터 그들은 다수 필사본 그리스어 본문들(정확한 사본들)에서 나온 성경들과 그 소유자들을 함께 불태우거나 없애버렸다. 그런데 그 당시의 성경기록관들의 양심이 그 불에 너무 가까이 다가감으로 인해 화인을 맞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부패한 '70인역'(LXX) 본문을 참 성경 안으로 슬며시 밀어 넣어 '새' 라틴 벌게이트(New Latin Vulgate, 제롬의 라틴벌게이트)를 만들었다.
이러한 사기행각이 드러날까 두려워, 이들은 구 라틴 벌게이트(Old Latin Valgate) 성경과 그것을 소유한 성도들을 모두 불 속으로 던져 버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대판 신비주의자들도 이 '새로운' 라틴 벌게이트와 '70인역'(septuagint)본문을 '킹제임스성경' 의 모태가 된 '다수 필사본 그리스어 신약 본문'이나 히브리어 마소라 구약 본문' 보다 더 선호한다.

중세 암흑 시대에, 로마의 일곱 언덕은 신비주의의 영향으로 티벳의 히말라야로 둔갑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심지어 로마 교회는 14세기경 공식적으로 부다(Buddha, 부처)를 성인으로 추대(시성)했다. 그런데 이로부터 수세기가 지난 후에 카톨릭의 성자 성.여호사팟(St.Josaphat)은 보드히사트바(Bodhisattva : 보살)의 부패한 번역본에서 나왔음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과오는 역사가들이 "그 당시의 로마는 일반인들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된 성경을 공급하는 자들을 화형시켰다." 고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이 14세기에 행한 다른 많은 과오들에 필적할만한 것이다. 이같은 로마 카톨릭의 광포가 끝나갈 무렵에 발간된 '제네바성경'은 앞으로 전진하라고 연기 신호를 보냈다. 그 성경의 민수기23:8(하나님께서 저주하지 않은 자를 내가 어떻게 저주하랴?")옆에는 "교황이 네게 말해줄 것이다." 라는 각주가 적혀 있다.
16세기 후반에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 당시에 'TR'(Textus Receptus, 수용본문 또는 공인본문)이라 불리던 '다수 필사본 그리스어 신약성경 본문'을 "금서목록"에 올려 놓았다. 지금도 NIV 번역위원회는 20세기 성서독자들에게 교황이 내린 금지령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각종 신약성서들의 근간이 된 원래의 필사본들과 비교했을 때, 'TR'은 심각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들을 상당히 많이 포함하고 있으므로 성경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데 근간이 되는 원문이 될 수 없다 는 사실은 거의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NIV 편집인 영 블러드(Ronald Youngblood)-


이런 사실로 인해 중세 로마교회는 'TR'대신에 자기들의 '새' 벌게이트 성서(제롬의 라틴 벌게이트)를 새로 번역한 '림스 듀이 역본'(Douay version)을 제시했다. 이 역본은 블라바츠키 가 쓴 '비밀교리'(Secret Doctrine) 1권과 2권에서 자신이 주장하는 "거룩한 사탄" 이라는 명제를 뒷바침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활용했던 매우 부패한 역본이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저서에는 주로 로마 카톨릭 성서인 '듀이 역본'이 주로 사용되었다."


블라바츠키가 로마 교황 피오 4세의 역본을 권장하는 동안에, 이 교황은 프로테스탄트 성경연구를 저주한 '이단목록'(Syllabis of Errors)을 작성했다.
또한 교황은 사람들이 로마의 학설을 더 많이 수용하도록 하기 위해 '바티칸사본'(Vaticanus, B사본)을 소수의 선택된 비카톨릭 원문 비평학자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이 기회를 통해 강신술사였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블라바츠키가 '바티칸사본'의 후예인 '새' 벌게이트와 '듀이 역본' 속에서 감지했던 것과 '똑같은 영'을 보았던 것이다. 그 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바티칸 사본을 그대로 반영하여 전통적인 다수 필사본 그리스어 본문을 수정했다. 이들이 총체적으로 변개한 본문이 결국 카톨릭 교회가 사용하는 본문과 같게 되었을 때 히틀러의 친구였던 교황 피오12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떨어져 나간 형제들(즉 프로테스탄트들)과도 상호 협력하여 성서번역본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같은 교황의 꿈은 기독교로서는 악몽이 되고 말았다. 현재 연합성서공회(UBS)가 발간하는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움직이는 네 개의 바퀴들, 즉 알란드(Aland), 블랙(Black), 메츠거(Metzger) 그리고 위크그렌(Wikgren) 을 조종하는 인물이 바로 이태리의 카톨릭 우두머리인 마르티니(Carlo M. Martini)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로마 카톨릭 추기경이 그 성서의 편집장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성서번역자들을 위한 판본의 앞부분에만 명시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프로테스탄트들로 하여금 아예 분노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이 번역 위원회가 펴낸 '그리스어 신약성서에 관한 원문비평학 주석'(The Textual Commentary on the Greek New Testament)에는 급진적 자유주의와 로마에 대한 강한 애착심이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
이 책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편수한 '새' 그리스어 성서가 현재 연합성서공회(UBS)가 펴낸 성서를 위한 본문이 되었다."고 인정하면서, 자기들이 펴낸 성서의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새' 그리스어 본문과 이 본문에서 번역된 새 역본들이 다분히 로마카톨릭 적이라는 사실은 로마교회 자체가 확증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 카톨릭 교회는 자신들을 위한 번역본의 본문으로 더 이상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에 마르티니, 메츠거, 알란드, 그리고 위크그렌이 펴낸 본문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제는 프로테스탄트 역본과 카톨릭 역본이 다같이 바티칸 소수 필사본 그리스어 본문을 원문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네슬레와 성서공회본문들은 이제 동일하다).

새 역본들의 로마화는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세계 여러 국가와 국제기구들의 수뇌들에게 행한 첫 번째 메시지. 즉 '평화에 이르려면, 평화를 가르치라' 라는 제목의 메시지는 그 무엇보다도 특히 언어학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이 메시지에서 그는 "분열"을 초래하는 단어나 개념들을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로테스탄트 역본인 것 같으나 실상은 카톨릭 성서인 NIV및 NASB 등이 이제는 버젓이 프로테스탄트들의 손에 쥐어져 있으며, 한 세대 전에 큰 분열을 체험했던 교단들 간에 다리를 놓아주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NASB의 선구자인 필립샤프(Phillip Schaff)는 바로 그런 일을 하려고 준비작업을 해왔다.


"지금까지 바꾼 것들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며, 거기에는 새로운 신학의 보석들이 포함되어져야 한다. 매 시대마다 각기 그 시대에 맞는 신학이 조성되어야 하며, 그와 같은 신학은 기독교계의 재연합을 향한 길을 예비해 줄 것이다."


로마 카톨릭을 향한 샤프의 강한 애착에 대해, 그가 속했던 교단은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그를 이단으로 단죄했으며, 로마주의와 모든 교리적인 사악함에 대한 맹렬한 비난이 그에게 가해졌다." 그러나 그는 교단들의 압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프로테스탄트를 로마교회로 되돌리기 위한 작업을 계속했다. 결국 "새 시대를 의미하는 카톨릭적 프로테스탄트 사상"이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새 역본들의 매 페이지마다 메아리치게 되었다.
카톨릭과 성경적 기독교를 구분짓는 두 가지의 주요한 교리는 1)교황제도 2)고해성사, 성직계급 체계 및 '성체성사' 등의 성례전이다. 이런 사악한 것들이 샤프와 같은 성경기록관에 의해 새 역본들 속으로 침투해 들어왔으며, '카톨릭적 프로테스탄트'라는 새로운 잡종식물을 배양해 내고 있다.

'로스엔젤레스 타임지'는 거짓 목자인 교황이 "기독교 교단들을 다시 데리고 돌아오라" 라고 촉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리하여 검음 양들은 거짓 목자를 향하여 질주하며 말한다.


" 이제는 우리 프로테스탄트들이 목자(즉 교황)에게로 가서,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어야 할 때이다."
-로버스 슐러(수정교회 목사)-


"영국 국교회(성공회)는 로마 주교(즉 교황)가 성 베드로의 보편적 권위를 갖고 있음을 차츰 인정하며 환영하기 시작했다."
-영국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


모래성과 같은 로마의 대성당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체를 통해 걸러내고 자세히 살펴보면 곧 붕괴되고 만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성서 모닥불'(중세 때 성경을 불태운 사건을 염두에 둘 것)로 그 체를 태워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문화'적 분위기로 인해 더 이상 화형이 힘들어지자 그녀는 '거짓 우화들'을 마치 거미줄 커튼처럼 짜내어, 사탄의 일곱 첨탑 교회의 창문들을 가려 버렸고, 이로 인해 "의의 태양"(the Sun of righteousness, 말라기 4:2)이 그 위에 비치지 못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뱀이 고용한 성경기록관들(새 역본의 편집인들)에게 속아, 그 안에 발을 들여 놓은 "자신의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또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너희는 그녀에게서 나와 그녀의 죄들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고 그녀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요한계시록18:4)KJV




- 게일 리플링거(1993) -










<크리스마스에 대한 바른 이해>


"그러나 너희가 그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신들이 아닌 것들을 섬겼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께서 너희를 아시거늘 어찌하여 약하고 천한 초등원리로 돌아가 다시 거기에 속박되기를 바라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때와 해를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 4:8-11).

"그러므로 누구든지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성일이나 월삭이나 안식일들을 인하여 너희를 판단치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차 올 것들의 그림자이나, 실체는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


크리스마스는 비단 기독교계뿐만 아니라 세간의 모든 사람들이 가장 성대하고 화려하게 치르는 축제입니다. 이 날을 통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기억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의 기원과 유래, 그리고 이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조명해 본다면,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이 이 글을 쓰는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하지만 성경대로 믿는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진리의 말씀에 기초하여 이 글을 씁니다. 결코 어떤 개인이나 특정 교회나 단체를 정죄하거나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크리스마스에 대한 성경적이고 올바른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건전한 신앙생활을 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순수한 동기에서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부디 이 점을 이해하시고, 끝까지 주의 깊게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크리스마스'라는 용어의 뜻

'크리스마스'는 성탄절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만, 이 단어의 정확한 어원과 뜻을 살펴본다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결코 유쾌하지 않은 용어가 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어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크리스마스 = 그리스도 + 미사

Christmas = Christ + Mass


쉽게 말해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입니다. '미사'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제사'를 일컫는 말입니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미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단지 요한복음 4장 24, 25절에 있는 말씀대로,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경배를 드릴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크리스마스'라는 용어를 쓰지 말아야 합니다. 부득이 불러야 한다면 차라리 '성탄절'(聖誕節)이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어원을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것이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비롯되었음을 금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크리스마스의 기원과 유래, 그리고 그것의 비성경적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그냥 교회의 가장 중요한 행사로 지키고 있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날'(day)의 문제에 있어서, 어떤 한 날을 다른 날보다 중히 여겨 매번 정기적으로 지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모든 날을 같게 여기므로 특별한 날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음식을 먹는 문제에 있어서도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먹을 만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채소만 먹는 연약한 사람도 있습니다(롬14:1-5). 따라서 어떤 특정한 날을 지정하여 지키는 문제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고 안 먹고 하는 문제는 각자 자기 마음에 확정한 대로 행하는 믿음과 확신의 문제입니다(롬14:5).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명확한 성경적 원칙과 기준을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 원칙과 기준을 반드시 제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영적 규칙과 질서는 파괴되고, 판관(사사) 시대와 같이 사람들이 각기 자기 소견의 옳은 대로 행하게 될지라도 수수방관만 하는 영적 무방비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며, 심지어는 영적 탈선과 타락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경기하는 자가 규칙에 따라 적법하게 경기를 해야 하듯이(딤후 2:5), 믿는 사람들도 각자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법에 따라 신앙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실 때 반드시 말씀에 따라 심판하실 것입니다(요12:48).

처음에 제시한 갈라디아서 4:9,10 말씀은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날'과 '달'과 '때'와 '해'를 지킴으로 '약하고 천한 초등원리'로 되돌아가 거기에 다시 속박되는 문제에 대해 아주 강력하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성경을 통해 자신의 교회에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규례는 '밥티스마'(침례)와 '주님의 만찬' 두 가지뿐입니다. 그 외의 모든 행사나 절기들은 아무리 좋은 의미로 가장되고 장식된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바와는 동떨어진 것들입니다.

크리스마스 축제가 이교도 국가인 바빌론의 풍습에서 유래되었음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원과 유래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에 대해 먼저 성경적으로 살펴본 후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

성경은 그리스도의 탄생일이나 그분의 탄생연도에 관해 전혀 언급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에 대해서 우리가 알기를 원치 아니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분의 탄생은 이 대속을 위한 과정입니다. 더 중요한 구심점은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그분의 재림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탄생을 기억하는 것도 그분의 구속의 과정을 되새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제시하지 않은 사실을 우리가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신 바를 따라 행해야 합니다. 꼭 그분의 탄생 시기에 대해서 알아야겠다고 한다면 알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그 시기는 지금 우리가 지키고 있는 것처럼 12월 25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이 12월 25일이라는 설은 고대 바빌론 종교에서 유래되었고, 로마 카톨릭 교회가 이 이교적 풍습을 받아들여 기독교와 접목시켰으며,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교회에까지 흘러 들어온 것입니다. 우선 팔레스타인의 지리적 특성과 유다인들의 관습, 그리고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가 12월 25일이 아님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들판에 있던 양떼들이...

우리는 누가복음 2:8에서 천사가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그분의 탄생을 알려주었던 때에, 목자들이 넓은 들판에서 밤까지 양떼들에게 풀을 먹였으며, 밤에 들에 묵으면서 양떼들을 지키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겨울은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상당히 추우며 비가 오는 계절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0월 말 이후에 목자들이 들판에서 자신들의 양떼들을 먹이고 지키는 것은 그들의 관습이 아닐 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3월 하순이나 4월 초순경부터 양떼들을 들판에 방목하다가 10월경 첫비가 내릴 때쯤에는 추위로 인해 모든 양떼를 집으로 몰고 돌아와서는 우리 안에서 겨울을 나게 했습니다. 에스라 10:9-13을 보면,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모았을 때인 아홉째 달 이십일 경(유다 월력-우리 월력으로는 11월 중순경 이후임)에 비로 인해 떨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 사실로부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늦어도 10월말 또는 11월초 이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베들레헴에 있는 여관에 그들이 있을 방이 없어...

유다인들은 일년에 세 차례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에 그분을 경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했습니다(출 23:14-17, 참고 - 출 34:24; 시 50:5). 9월 중순에서 10월 중순까지는 유다인의 7대 절기 중에서 나팔절, 속죄절, 장막절을 지키러 가는 시기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던 그 시기에 예루살렘 근교에는 각처에서 올라온 많은 순례자들이 일시적으로 증가하여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던 날 저녁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서조차도 거할 장소가 없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즉, 마리아와 요셉이 아우구스투스의 칙령에 의해 호적을 등록하려했을 뿐 만 아니라 이 유다인의 절기 중 하나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상경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예루살렘의 총독을 통해 유다인들의 이러한 풍습이 있음을 듣고 이 시기에 맞춰 호적등록을 하라고 칙령을 내렸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종교의 위력은 정치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리스도의 탄생일에 대한 명확한 성경적인 근거는 없지만 성도 요한의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묘사하면서 '거하시니'(tabernacled, 장막을 치시니)라는 예상외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시니"(요1:14)

위 구절에 나오는 "거하시니" 라는 말은 영어로는 "dwelt"이고 그리스어로는 "tabernacled"로서, 이 "tabernacl"이라는 단어가 바로 장막절을 나타냅니다. 이로써 우리는 그분께서 장막절에 출생하셨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유다인의 장막절은 지금의 월력으로는 대략 9월 중순에서 10월 중순경에 해당합니다. 만일 이것이 옳다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정상적인 수태기간이 사십 주임을 고려해 볼 때 정확하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력의 12월 25일에 예수님을 잉태하셨습니다. 참으로 신비하지 않습니까?


3. 만삭된 여인이 한겨울에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에 모든 여인과 아이들도 자기들이 속한 도시에 조세등록을 하러 가야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주 길고 오랜 여행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한겨울에 여인들과 아이들이 여행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만삭의 몸인 여인이 여행을 한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 지방의 겨울이 그렇게 혹독하게 춥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마태복음 24장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유다인들)의 도피하는 일이 겨울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겨울이 유다인들에게 있어 도망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계절이라면, 아이들이나 여인들이, 특히 아기를 밴 여인이 여행을 한다거나 목자들이 밤에 들판에 묵으면서 양떼들을 지키는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위의 고찰들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가 12월 25일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으며, 아무도 이를 반증하지 못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는 것이 어떻게 유래된 것일까요?


크리스마스는 어디서, 어떻게 유래되었는가?

초대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였지만, 탄생을 기념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11:26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대영백과사전」도 "크리스마스는 초기 교회의 축제들 중에는 없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카톨릭 백과사전」(1911년판)도 "크리스마스는 교회의 가장 초기에 있었던 초기 축제일에 들어 있었던 축제가 아니라... 그 축제의 기원은 이집트이다... 이레니우스와 터둘리안은 축제일 목록에서 크리스마스를 삭제하고 있다." 라고 말합니다.

로마 교회는 4세기 후반에 고대 로마의 태양신 솔(Sol)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지정하여 지키기 시작하였고, 5세기에 이르러서는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영구히 지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대영백과사전」도 그 기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에 기념하는 이유는 불확실하지만, 초기 기독교들이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Natal is Solis Invicti)이라는 로마의 이교 축제와 같은 날에 기념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 이교 축제는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고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지를 기념한 것이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전통 관습들은 이교도들이 한겨울에 벌이던 농신제 및 태양 의식들과 그리스도의 탄생을 한데 합쳐서 생기게 된 것이다. 로마 세계에서는 농경신 사투른을 기념하는 축일 '사투르날리아'(12월 17일)에 흥겹게 지내며, 서로 선물을 교환했다. 또한 이란 사람들은 12월 25일을 신비로운 신, 미트라(정의의 태양)의 탄생일로 여긴다. 로마력 설날(1월 1일)에 사람들은 자기 집을 푸른 나무와 등불로 장식했고, 자녀들과 가난한 사람에게 선물을 주었다. 튜튼족이 갈리아, 브리튼, 중앙 유럽으로 침입해 들어오면서 게르만족과 켈트족의 크리스마스 축제 의식들이 이러한 관습들에 융합되었다. 음식과 교제, 크리스마스 이브에 벽난로에 때는 장작과 크리스마스 케이크, 푸른 나무들과 전나무들, 선물과 인사 등이 이 축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되었다. 이교도에게나 기독교도에게나 겨울 축제일은 언제나 따뜻함과 꺼지지 않는 생명을 상징하는 불, 등불들과 관련되었다."


「카톨릭 백과사전」 또한 이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며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12월 25일에 지켜 온 잘 알려진 나탈리스 인빅티의 태양 축제(즉, 정복되지 않은 태양의 탄생)는 우리가 12월 25일에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것에 대한 좋은 근거가 된다"(제3권, p. 727, Christmas).


이러한 이교적 태양신 숭배의 관습이 로마에서 '기독교화' 되었을 때 큰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몇몇 사람들은 예수님이 태양신인 '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터툴리안은 솔(Sol)은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어거스틴조차도 그리스도를 솔과 동일시하는 것을 이단이라고 탄핵했던 것입니다.

고대의 동계 축제는 대단히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인기로 인해 로마 교회는 이것을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때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크리스마스의 관습 중 많은 것들이 로마의 농신제(Saturnalia)의 영향을 받은 것들입니다. 베일리라는 저술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크리스마스 기간과 관련된 여러 가지, 즉 휴일들, 선물 교환, 겨울나무 등이 이교주의의 유물인 로마의 겨울 농신 축제가 계승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알렉산더 히슬롭 목사도 그의 저서 「두 개의 바빌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원이 이교도의 축제일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을 지킨 날짜와 그 때 행하는 의식이 그 날의 기원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하늘의 여왕을 이시스(Isis)라고 불렀는데, 그녀의 아들이 '동지'인 바로 이 때에 태어났다. 우리들이 크리스마스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인 '율 데이'(Yule day)는 이 날이 바로 이교도 국가인 바빌론에서 유래되었음을 밝혀 준다. 여기서 '율'(Yule)은 '어린 아이'를 뜻하는 칼대아 말이다. 12월 25일은 기독교가 들어서기 훨씬 전에 이교도 앵글로색슨 조상들이 '율 데이', 또는 '아이의 날'이라 불렀으며, 그 전날 밤은 '어머니의 밤'이라 불렀다는 것은 그 날의 본질을 충분히 드러내 주는 것이다... 이 탄생일은 이교도 국가 도처에서 지켜졌다."


크리스마스의 뿌리는 바빌론 신비 종교

만리 홀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 따르면 고대 바빌론 왕국을 건설했던 니므롯 이전부터 카인의 후예들은 모든 생명의 근원을 태양으로 믿어 숭배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풍습이 바빌론의 니므롯 시대로 흘러 들어와 바벨탑을 쌓았던 니므롯이 죽은 후에 그의 아내이자 어머니였던 세미라미스가 니므롯을 당시 백성들에게 태양신으로 숭배하게 하였고, 자신은 그의 아내로서 '하늘의 여왕'으로 격상시켜 달을 상징하는 여신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그 태양신이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 (Osiris), 또는 '라'(Ra) 등으로, 카나안 땅에서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오염시켰던 '바알'(Baal)로 바뀐 것입니다.

이러한 태양신 숭배 풍습이 로마에서는 '사투르날리아'(Saturnalia)라는 축제를 하면서 12월 25일을 '나트리스 솔리스 인빅티'(Natlis Solis Invicti)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정복할 수 없는 태양의 탄생일'이라는 의미입니다. 태양신 '솔'은 바로 여기서 유래된 것입니다. 로마에서는 12월 22일 동짓날이 해가 가장 짧은 날이므로 이 날은 태양이 죽은 날로 믿었으며, 12월 24일은 해가 다시 길어져 태양이 살아나는 것으로 믿어 12월 25일을 해가 다시 살아난 날, 태양의 탄생일로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바빌론에서 세미라미스에 의해 태양신으로 숭배되었던 니므롯의 죽음과 재탄생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위의 증거들을 통해 크리스마스라는 절기가 이교도들의 풍습에서 유래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모든 교회와 온 세상이 크리스마스를 지키는데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세상 밖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고 세상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탄생이 없었다면 그분의 십자가 사건이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일년에 하루를 떼어(혹은 일년에 한 주일을 떼어) 성탄절로 혹은 성탄주일로 지키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12월 25일에 예수님이 태어났다.", 혹은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준다." 등과 같은 거짓말을 하지는 말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크리스마스가 연말에 있고 휴일이므로, 멀리 떨어진 가족들이 함께 모여 즐거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 자체를 정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아이들에게도 성탄절의 의미와 또 무엇이 잘 못된 것인가 등을 가르치면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믿습니다.

한편 어떤 이들은 이 모든 것이 이교도들의 풍습에서 나왔으므로, 나와 내 가족은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겠다고 결심할 것입니다. 저는 이 것 역시 각 자의 마음에 따라 주를 위해 하는 것이므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제가 타협한다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단지, 이 날을 지키는 사람도 주(主) 안에서 양심에 따라 거짓 없이 지키고, 지키지 않는 사람도 주(主) 안에서 양심을 따라 지키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날에 대해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며, 즐겁게 휴일로 지키면서 가족과 함께 주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음미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준승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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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믿든지 다른 종교를 믿든지 인간으로서 참되게 사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다 구원해 주신다.” (김수환 추기경, 도올의 논어 이야기 58강 중 2001년 4월 27일)


다른 사람 안에는 구원이 없나니 하늘 아래에서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사람들 가운데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하였더라.
(사도행전4:12)KJV